브랜드 디자이너가 공간을 만들면서 생각한 것들.

지난 2018년 12월, 디자인 스펙트럼에서 진행한 포트폴리오 리뷰에 참가할때 작게나마 썼던 글을 다시 정리해보았다. 청자가 듣고싶은건 경험을 진부하게 나열하기 보다는 직접 겪었던 시행착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더 재밌었다는 점이다. 강연을 기록할 겸, 지난 1년동안의 고민들을 고스란히 적어보았다. 일을 하며 시도하고 깨닫게 된 일들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먼저,  야놀자는 온라인/오프라인 사업군이 2개로 나눠진다. 온라인은 야놀자 호텔 부킹앱이고, 오프라인은 호텔 프랜차이즈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놀자는 호텔 부킹앱으로 알고있지만, 프랜차이즈 업까지 운영하는 규모가 큰 IT회사다. 헤이 프로젝트는 기존 브랜드를 리뉴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호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보통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비즈니스 브랜드를 어떻게 시각적인 결과물로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구체적으로 청사진을 한번 그려보고, 나만의 가설을 세워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헤이, 춘천은 이런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다. 참여하는 팀원들에게도 가설을 전달하고 상상을 공유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본격적으로 “헤이, 춘천”으로 시작해서 “헤이, 서귀포 – 헤이, 군산”같이 다양한 지역으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므로 “헤이 마스터 브랜드”를 지키면서 각 목적에 맞는 지역성격이 드러나는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일이 어려웠다. 그래서 그래픽 에셋을 만드는 것을 계획했고, 지역마다 포인트 인테리어에 지역 특성이 보이도록 제안했다. 헤이 마스터 브랜드와 생겨나게 될 지역의 컬러를 구분해 지정하였다. 이는 이후 브랜드를 구성하는 모든 제품의 소재 사용이나 컬러가 지역의 고유함을 결정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는 만드는 모두가 공감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프로젝트를 할 때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 새 하얀 도화지에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니었기에, 더 어려웠다. 가족형 호텔로 인테리어 컨셉은 80% 완성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헤이 춘천과 어울리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어울리는 콘텐츠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헤이 춘천은 웜톤의 목재가 인테리어의 주 소재였다. 이에 우드랑 잘 어울리는 패브릭은 실크보다는 면과 같이 부드럽지만 텍스처가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선정한 소재로 로브를 만들었고 가족형 호텔이라면 연령대가 다양한 손님들이 올 것이므로 원료나 만든 방법을 자세하게 적어 구체적으로 드러내면 어떨지 고민했다. 춘천만의 지역적 특성을 살려 소양강을 모티브한 캔들이 있다면? 막국수가 유명한 지역이니 굿즈로 푸드를 만들면 이렇지 않을까? 를 질문하고 상상했다. 상품 개발도 브랜드의 맥락에 맞는 상품으로 고민하게 된다. 이처럼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브랜드를 한번 전개해나가면 스스로 시각 결과물에 논리를 만들고 맥락이 생기게 된다.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면 이제 디자이너는 설득맨이 되어야 한다. 청사진을 공유하고 제안하는 것이다. 호텔 내부에서 실제 사용되고 있는 비품은 수십년째 변화가 없이 비치되는 제품이었다. 비품은 작은 티슈케이스부터 시작해서 슬리퍼까지 호텔 내 사용하는 제품을 ‘비품’이라고 부른다. 내부 운영/비품팀은 기존 비품을 구입하길 원했다. (그들의 KPI도 중요했기에 설득과 설득이 필요했다) 헤이, 춘천만의 브랜드 경험을 줄 수 있는 비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설득맨이 드디어 예전 경험을 차곡차곡 꺼내는 시간이 된 것이다. 그들에게 만든 청사진을 보여주고 기존에 필요한 비품에서 우선순위 비품과 변화를 줄 수 있는 비품을 나눠서 설득했다. 

청사진을 만드는 과정은 재미있지만, 설득해서 실제 구현되기까지 과정은 꽤 고되고 힘든 시간이었다. 확신을 얻는 데에는 모두의 경험이 쌓여야 한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공간이 지속가능하게끔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해본 적 없기에 도전이고, 레퍼런스는 레퍼런스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행스럽게 의견을 존중해주는 좋은 동료가 있었고, 도전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디렉터분도 계셨다. 기존 비품 구매 시의 비용과 새로운 비품 제작 시의 비용을 비교 산출하여 제안했고 다행히 통과했다. 이런 과정은 디자이너에게 지속가능함이 가장 중요하며, 현실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과정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었던 건 “어떻게 해야 이곳에 한번이라도 오게 할까”를 마케터만 고민할 주제가 아니다.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손님이라면 “왜, 어떤 이유로” 오고 싶을지 생각하는 것이다. 공간은 지속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한번 더 오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헤이, 춘천의 특화객실도 만들고 기획자와 춘천을 소개하는 지역 가이드를 주기적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일도 제안했다. 가족여행객이 좋아할 만한 일러스트를 웜그레이테일에게 의뢰하고, 몇몇 객실은 키티버니포니한테 코디네이션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은 더 좋은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졌다. 더 좋은 브랜드를 만들어서 훌륭한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과 협업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프로젝트가 중간 쯤 도달했을때, 청사진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적어도 내가 해낼 수 있는 목표를 상기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내가 해내고 싶은 것. 2가지 정도로 간추려보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첫번째는 인스타그래머블한 포토스팟을 만들자 였다. 두번째는 춘천을 궁금하게 하자 였다. 청사진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았는지 혹은 만드는 사람 입장만 고려하진 않았는지 너무 과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프로젝트의 중간점검은 꼭 필요하다. 헤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얻은 교훈은 좋은 설득맨이 되려면 히든카드처럼 경험을 잘 쟁여뒀다가 보여줄 수 있을때, 하나씩 하나씩 꺼내는 일이라는 것. 청사진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의 가설에 확신을 갖는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경험자산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이런 공간과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는 이런 소재와 조명을 쓰는구나, 동선은 이렇구나 같은 경험이 도움이 된다.

목표했던 것을 만족한 결과물로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스스로 브랜드 디자이너로만 한정짓지 않아야 이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에는 상품개발자가 되어야하고, 마케터가 되어야하고, 운영자가 되서 호텔을 운영하기도 해야하고 객실을 조화롭게 만드는 엠디가 되기도 해야한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PM이 될줄도 알아야 한다. 만약 계속 디자이너의 역할만을 고집했다면 나는 그 어떤 것도 해낼 수 없었을 것이고, 좋은 동료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공간을 만드는 주인이 아니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주인으로서의 시각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계속해서 일을 해나갈 때에 나는 누군가의 관심을 누군가가 좋아할만한 프로젝트가 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이고, 좋은 동료가 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만든 브랜드라면, 한번 쯤 가보고 싶고, 사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일.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2 Comments

송광현 04/10/2019 Reply

헤이 춘천을 보고 춘천이 궁금해졌습니다!

writewhitenote 04/12/2019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제가 이 글을 쓴 보람이 있어졌어요. 고맙습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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