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계속 의심하는 법

나의 신용도를 숫자로 잴 수 있어서 나를 신용하냐고 묻는다면 가족보다 그 어떠한 타인보다 점수가 낮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의심해왔던 것 같다. 얼마전 페이스북에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탄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가 떠돌았다. “재능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본인의 원동력이라는 말, 그 기사 인터뷰에 가슴이 괜히 아팠다. 스스로 정말 재능이 있는지를 돌이켜 생각하는 일은 죽도록 괴로운 일일 것이라는 말에 백퍼센트 동감할 수 있었다. (제가 글을 쓸때에는 봉준호 감독은 황금종려상을 탔었다… 아카데미, 오스카은 아직)

나의 공포와 나의 의심은 늘 정공법에 대한 불신이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어떤 모르는 정공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늘 의심했기 때문에 정공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걸어왔던 과정 속에서도 불안했다. “연차가 좀 더 쌓이면 알게 되겠지, 내가 아는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거야” 라며 비슷한 연차의 디자이너 생각을 엿보기도 하고 뒤쳐지지 않기 위해, 의심하기 위해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강박증세와 비슷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감각과 정보만으로는 모르는 그 어떤 것이 늘 존재하고, 늘 나는 못 미친다는 생각에 불안했었다.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드는 데에는 자신이 가장 큰 힘을 쏟아냈다.

정공법을 정답이라고 한다면 그럴 것이다. 늘 정답이라는 것은 존재하고, 내가 모를 것이라는 생각. 나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더 열의에 차게 만들기도 했었다.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노력했고 의심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좀 더 나은 자신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게 정말 원하는거야?”, “이게 정말 맞는거야?”를 늘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 속에서 찾는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법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1년째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1년 뒤 내가 다시 쓰고 있지만, (😱) 의심은 커다란 원동력임에는 틀림없다. 더 나은 것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답에 타협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하기 때문에 스스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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